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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일기

실패해도 괜찮아, 장수 트레일러닝 38K-P 완주

조앙'ㅁ' 2026. 5. 5. 02:39

올해 4월 초, 그러니까 저번 달에 회사 달리기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장수 트레일러닝 대회에 참가했다.
나는 그 중 38K-P 에 참가하게 되었다.
거리는 38.7km, 누적고도 2435m의 제한시간이 10시간인, 팔공산을 메인으로 뛰는 코스이다.
지방에서 열리는 행사이기도 하고 동호회 회원 중에는 더 긴 코스에 도전하여 밤 늦게 레이스가 끝나는 분들도 계셔서
이박삼일의 일정으로 다녀오게 되었다.



한 달 전 쯤 부터 대회 당일에 비 소식이 있었다.
나는 트레일러닝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산은 언제나 실족 등의 사고가 있을 수 있고, 산에서의 날씨도 변화무쌍하며, 로드 달리기와 비교했을때 추가적인 외부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까지 오면 더욱 위험하다. 어디선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치기 십상이다.
비가 온다면 대회를 불참하고 가까운 카페에 가서 책을 읽을 생각이었다.
처음 마라톤 뛸 때와는 사뭇 다른, 가벼운 마음이다.
마라톤 첫 참가 때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임했었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이 가벼운 마음 덕분에 도전을 하게 되었으니 아이러니다.

두 달 전, 트레일러닝 대회에 참여하기로 마음먹고 첫 훈련에 나갔을 때 동호회 회원 한 분이 물었다.

'왜 대회에 나가기로 마음 먹었어요?'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느즈막히 대회 등록을 했다.
왜 그렇게 힘든 대회를 자꾸 나가냐며 트레일러닝을 멀리하던 내가 마음을 갑자기 고쳐먹은 이유가 궁금했을테다.
나는 이제 실패해도 괜찮기 때문에 도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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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편안함의 습격'이라는 책을 읽고 도전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에서 누군가가 말한 '도전이란 성공과 실패 확률이 각각 50, 50이어야한다'는 말과,
'타인과 비교 불가능한 도전을 목표로 하라'는 말이 나에게 남았다.
책을 읽은 후 나 스스로 도전을 대할 때 실패하는 마음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깨달았고 또 그 마음이 나의 도전을 어느정도 막고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낼 수 있는 것만 하는 것보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조금 더 도전하자고 마음 먹게 되었다.
'비교 불가능한 도전'은 조금 어려운 숙제였는데 우선은 기록을 비교하게 되는 마라톤보다는,
완주를 목표로 하는 트레일러닝이 그나마 책에서 말하는 도전과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 신청하게 되었다.

흔히 마라톤이나 트레일러닝과 같은 엔듀런스 스포츠를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말하곤 한다.
자기와의 싸움. 자기의 무엇과 싸운다는 것인지 알 수 없어 마음에 썩 들지 않는 표현이다.
마라톤을 뛰기 전의 나는 '왜 마라톤을 뛰냐'며 묻고, 그런 대답을 하는 사람에게 괜시리 '싸울 사람이 없어서 왜 본인과 싸우냐'며 '참 힘들게 사시네요!'하고 말하곤 했다.
누군가 나에게 왜 엔듀런스 스포츠를 하냐고 묻는다면 '자기 인식과 확장을 위해서' 한다고 말하겠다고 다짐한다.
나라는 어떤 모형이 있다고 하면 그 가장자리를 넓히는 작업인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 가장자리에서 나에 대해 가장 잘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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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반. 비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커튼을 걷고 창문 밖의 산에 뿌옇게 낀 안개와 비 내리는 장면을 보며,
'아 비가 정말 많이 오네. 내일은 카페에 가야겠다.' 하며 다시 잠들무렵
어떻게든 완주해보겠다고 했던 그동안의 훈련들이 괜히 아까워졌다.

대회 출발 전, 대회가 두 시간 미뤄졌다는 문자가 왔다.
예보에 따르면 오전 10시 까지만 비가 오기로 되어있어서 9시 대회 시작 후 한 시간 정도만 가벼운 비를 맞으면 되었다.
유튜브로 본 장수 트레일러닝 후기 댓글에는 진흙탕 싸움이 될 거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참가하지 않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위험한 상황인지는 실제로 경기를 해봐야 알 것이었다.

예상대로 대회 시작 후 한 시간정도 비가 왔고, 산에는 처음보는 온갖 형태의 다양한 진흙탕이 마련되어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진흙탕에 페이스 조절도, 초반 보급도 실패했다.
매 보급소 체크포인트(CP)를 컷오프 시간에 간당간당하게 들어오기도 했다.
(컷오프 즉 제한시간에 들어오지 못하면 실격으로, 중간에 집에 돌아가야한다!)
어떤 길엔 안개가 자욱히 껴 앞 선수가 잘 보이지 않기도 했고,
처음 뛰어보는 거리와 코스에서 오는 압박감과 스트레스도 물론 있었다.
오르막 구간에서는 숨이 터질듯 힘들다가도 능선구간과 내리막에서는 모든 것을 잊는다.
그리고 다시 오르막 구간에 들어설 때는 다시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들어선다.


대회 참가자 중에는 시각장애인 아내와 남편이 함께 뛰는 부부 동반 선수가 기억에 남는다.
손을 꼭 잡고 뛰거나 남편 어깨에 손을 얹고 내리막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눈을 뜨고도, 장비를 충분히 갖추고도 충분히 힘든 코스인데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람들 처럼 보였다.
불가능해보이는 영역까지 서로를 밀어주는 장면을 직접 보는 것은 참 기쁘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요즘은 많은 어려움에도 도전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 두분의 도전은 더욱 빛나보였던 것 같다.

32키로 지점 쯤에서 시야확보가 안되니 헤드랜턴이 없으면 컷오프라고 여기서 하산하라고 해서 정말 정말 속상했던 시점에 찍은 사진. 8시간이나 달렸는데 컷오프라뇨.. ㅠㅠ 함께 달리던 사람들이 항의하여 헤드랜턴 있은 사람을 선두로 그룹으로 통과 시켜주셨다. 그와중에 시각장애인 분은 ’저는 원래 안보이는데 그냥 가면 안되나요?’ 하셔서 웃픈, 블랙코미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장수 트레일러닝 코스는 아름다웠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오르막 끝에 잠깐의 능선을 달리는 동안 탁트인 풍경을 잠깐 바라보기도하고,
조릿대와 소나무가 가득한 능선을 달리고 자작나무 숲을 뛰기도 했다.
양 쪽 길에 가득 핀 진달래 꽃이 나를 반겨주는 것 같기도 했다.
보급소의 맛있는 주먹밥과 지역 자원봉사자분들의 따뜻한 응원과 코스 내내 걸려있던 응원 플랜카드 문구들도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에는 고분 위를 달려 장수종합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코스였는데 한 명 한 명의 선수들이 힘들고 지친 와중에 마지막 순간 까지 고분 위를 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그 중 한 명이 되어 달렸다. 아마 노을이 지는 풍경이 배경이 되었다면 조금 더 멋졌을 것이다.
나는 9시간 25분의 기록으로 장수트레일러닝 38K-P 완주에 성공했다.

끝나고나니 눈물이 핑 돈다.
마라톤 완주하고 나서는 이게 달리기 지옥인가 이승인가 저승인가 헷갈리고 다리가 아파서 집에 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힘들어서 화가 났었는데 사뭇 다른 마음이다.
트레일러닝이 시간적으로는 좀 더 길어도 마라톤보다는 더 여유가 있었던 모양인지 감동이 몰려왔다.
나 스스로가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번 중간에 그만두고 싶어도 계속 끝까지 달렸기 때문이다.
또 함께 완주했던 동료들에게도 고마움이 밀려왔다.
힘들어서 짜증도 여러번 냈는데 다같이 잘 완주하게 되어 감사했다.
장수트레일러닝은 나에게 자랑스럽고 감사한 추억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응원의 플랜카드. 정말 응원이 된다. 마라톤은 30키로 지점부터는 응원이 응원으로 안들리는데 트레일러닝은 응원받으면 기쁘다 하하


자꾸 다음 대회를 찾는 걸 보니
어쩌면 트레일러닝도 안전지대가 된 것 같다(?)
나의 다음 성공확률 50% 인 도전은 무엇어야할지 고민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