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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 비겁한 방관은 폭력과 다르지 않으니

조앙'ㅁ' 2018. 3. 17. 01:19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를 보고

 얼마 전 지대넓얕에서 '흑인 버스 안타기 운동'을 들으면서 흑인 인권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왓챠플레이에 올라와서 보게된 영화이다. 버틀러라는 직업은 어떤 일을 할까 혹은 대통령의 삶이 살짝 궁금하기도 했는데 그런걸 많이 바랐다면 많이 아쉬웠을 것 같다. 흑인 인권의 역사에 더 방점이 찍혀있는 영화다.

 흑인인 그는 어린 시절 목화 농장에서 일한다. 농장 남자 주인이 엄마를 창고에 데려가자 그의 아빠가 항의하다가 총에 죽었다. 엄마는 그로 인해 말을 잃는다. 딱하게 여긴 농장 백인 할머니는 이 흑인 아이에게 집안일을 배우게 해준다. 꼬마아이가 자란 후에는 집에서 나와 호텔에서 일하게 된다. 열심히 일하던 그는 추천을 받아 워싱턴에 있는 한 호텔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백악관 인사권자의 눈에 들어 대통령의 집사인 버틀러가 된다. 그는 본인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두 아들의 삶으로 인해 그의 평화는 깨지게 된다. 첫째 아들은 남부의 대학으로 진학하고 그곳에서 학생운동 시위 등에 참여하며 감옥을 들락날락 한다. 버틀러로 살아온 그는 혹은 평온한 삶을 지키기 위해 살아온 그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급기야 집에 돌아온 아들을 쫓아낸다. 둘째 아들은 베트남 전쟁에 파병됐다가 죽는다. 끊임 없이 진행되는 흑인 해방 운동으로 그도 점차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하기 시작하고 결국엔 흑인 임금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또, 첫째 아들이 옳은 일을 한다는 데에 동의하고 화해하게 된다. 이후 평생 백인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았던 자신의 버틀러로써의 삶에 회의감을 느끼며 사직서를 내고, 몇 년 후 그들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를 맞이한다.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긴 하지만 나에게 그렇게 놀라운 사실은 아니었다. 대통령이 되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땐 '뭐, 할 때도 됐지. 웬 호들갑이람' 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대넓얕을 듣고 나서 흑인 인권을 쟁취해낸 역사가 약60-70년 정도이며 아직도 차별이 만연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 친구들의 겪었던 유럽에서의 여러 경험들과 유튜브의 컨텐츠 등을 통해 인종 차별이라는 것이 극소수의 사람이 그날 하필 운 나쁘게 몰상식한 사람을 만나 겪는 나쁜 일이 아닌, 일상의 일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 영화에서 시위의 변곡점이 되는 장면은, 흑인운동에 별 관심이 없던 존 F 케네디가 날로 심해지는 시위를 보고 관심을 갖게되어 그가 공공장소에서 인종차별을 모두 없앨 것을 연설하는 장면이었다.
"... 비겁한 방관은 폭력과 다르지 않으니..."
권력이 있는 백인이 비로소 인정해주어야 그들의 문제가 인정되는 것과, 과격한 시위를 보고나서야 무언가 변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연설을 들으며,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도 적용될만한 말이라 생각했다. '선의의 방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비겁한 방관을 해왔는가. 
 나는 이 영화를 단순히 괜찮은 영화로 평가하기보다는, 그 역사를 보고 미국의 정치 역사와 흑인 인권 운동에 더 관심이 생기게 했다는 데에 이 영화의 평점을 높게 주고 싶다. 미국 정치 역사가 궁금한 이유는 .. 멋있어서 이다. 곳곳에 실제 TV로 송출 되었던 장면이나 신문에 실린 사진들이 나왔는데,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군인들이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고 쏘고있는 장면은 우리나라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게했다. 본래부터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였을 것만 같은 미국도 그런 일이 있었다니.

공감하는 능력은 후천적으로 배우는 것이라 한다. 타인의 상황에 공감하는 것을 배우고 노력하며 비겁한 방관을 하지 않는 삶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