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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해외여행

영국에서 기차 잘못 탔을 때

조앙'ㅁ' 2025. 2. 19. 19:29

나는 기차, 버스 같은 교통수단에서 잘 못 해 볼 수 있는 일은 다 해본 것 같다.
그래도 나이 먹으면서 점점 더 나아진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한 건 했다,

김포공항행을 타야했는데 인천공항행을 탔다.
긴 이야기지만 아무튼 다음 역에서 인천공항행으로 바꿔 탔다. 정신만 차리면 어떻게든 방법은 생긴다.


맞는 버스를 타고나니, 영국에서 기차를 잘 못 탄 일이 떠올랐다.

나 같은 실수를 하는 사람은 없는지 인터넷에 검색해도 영국에서 기차 잘못 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좀처럼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국에서는 기차를 잘못 타도 목적지까지 어떤 기차를 타도 추가 금액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나는 영국 더비에 사는 친구 집으로 가기로 했다. 친구와 얘기하고 싶기도 했고 얼마 전 결혼을 해서 남편과도 직접 보고 얘기해보고 싶었다. (친구 남편과는 전화로 얘기해본 적이 있었다)

런던의 판크라스역 출발 기차였는데, 킹스크로스역과 붙어있는 역이었다. 두 역은 지도상에서 겹쳐 보였다. 기차역에서 으레 보이는 플랫폼 현황판을 보니, 내가 타야 하는 출발시간과 같은 기차가 보였고 그 기차를 탔다.

영국에서 기차 타보는 것이 아주 기대되었기 때문에 상당히 신나 있었는데 20분쯤 지나자 빨간 옷의 역무원이 지나다니며 검표를 했다. 거리낌 없이 내 표를 보여주자 역무원은 이 티켓이 아니라며 돈을 내라고 했다. 자세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화로 17만 원쯤 되는 큰 돈이었다,

오잉. 요새는 옷도 다 차려입고 사기를 치나? 빨간 옷을 입고 사기를 치는 사람도 있나?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옳은 장소에서 옳은 시간에 탔는데 잘못됐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설명을 계속 들어보니 판크로스역과 킹스크로스역은 따로 있었던 거였다. 나는 판크로스가 아닌 킹스크로스에서 탄 것이고. 아 이런.

오 그런데 돈을 내기 싫었다. 한국은 잘못 탔으면 어떻게 해라 안내해 주는데 그것도 아니고 돈을 두배로 내라고? 이 기차는 목적지도 다르고 제대로 가야하는 기차표를 다시 사야할지도 모르는데 큰 돈을 지불할 수는 없었다. 영국의 기차표는 출발시간이 임박할수록 비싸져서 티켓이 정말 비싸다. 역무원이 계속 결제를 요구해서 마지못해 하긴 했는데 다행히 환전을 덜 해놔서 체크카드 결제에 실패했다. 환전을 해야 하는데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기다려야 된다 말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내니 역무원이 다른 데 가서 검표를 시작했다. 그 사이에 기차는 멈췄고 그 역에서 갈아타면 된다는 걸 이미 확인했기 때문에 나는 짐을 들고 후다닥 내렸다. 신났다.

그즈음 친구남편에게 내 소식이 전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줬다. 영국은 무슨 철도법에 의해서 목적지가 적힌 티켓이 있으면 어느 기차를 타도 돈을 안내도 된다고 했다. 오 나는 아주 잘 튀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차표 판매소로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기차표를 사야 된다고 했다. 엥 아니라고 했는데.. 일단 급하니까 샀다. 그리고 승강장에서 표검사하는 분에게 다시 한 번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추가 표를 사지 않아도 목적지까지 가도 된다고 했다. 그분은 아주 자상하게 말해줬다.
표를 환불하러 깄는데 표 파는 분이 '그러면 안 된다'면서 엄청 무서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환불 제발 해주세요.' 빌어서 환불받았다. 알고 보니 그 기차표를 파는 분도 아까 그 기차회사의 직원이다. 그 회사이름은 LNER다. 아주 악독한 회사다.

거기서 실랑이를 벌이는 바람에 기차가 오는 플랫폼까지 초인적인 힘으로 엄청나게 무거운 짐을 들고뛰어서 타야 했다. 그래도 결국엔 잘 탔고, 도착 예정시간보단 좀 늦었지만 친구도 만날 수 있었다. 꽤나 스펙터클한 경험이었는데 추가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있었음에도 잘 피해온 것 같아 뿌듯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와 같은 경험을 잘 안 하는 모양이지만 아무튼 모쪼록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 글이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