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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기전에자자
재택 커피 정착기 본문
회사를 다니면서 부터 '아침 라떼 의식'을 해왔었다. 사내에서 팔던 카페 라떼가 너무 맛있는 탓에 아침마다 엔도르핀이 돌게 하는 라떼 마시는 일을 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응원하고 싶은 날엔 아이스, 위로가 필요한 날은 따뜻한 라떼였다. 어떤 날은 따뜻한 라떼에 하트모양의 라떼 아트를 받았던 적도 있다. 라떼를 마시며 오늘의 마음 상태를 확인하고 오늘 뭐 할지, 우선 순위가 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재택을 하게 되면서 항상 해왔던 아침 라떼 의식을 하지 않으니 마치 일을 시작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재택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일의 시작은 커피 마시기가 되어야 했다. 나에게 맛있는 향기로운 커피는 일을 시작하기 위한 핵심 아이템이기 때문에, 맛과 향이 좋아야 하며, 매일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 현재의 콜드브루 시스템이 생기기 까지 6개월 간의 긴 여정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커피는 일 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아이템이다. 내 경험이 다른 사람들의 시행착오에 약간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오늘은 그 경험담을 풀어내려고 한다.
처음엔 카누를 마셨다. 신선한 카누는 겉에 원두 가루가 입혀져 향기로운 향과 맛이 났다. 그래서 한동안은 카누를 마셨다. 그러나 카누는 제조일자 기준으로 6개월이 넘으면 많이 산화된 커피맛이 난다. 그래서 제조일자를 유심히 보고 사지만 2-3개월 지난 커피임에도 종종 실패하는 경우가 있었다. 인터넷 쇼핑이 편리하다지만 제조일자까지 표기하며 카누를 파는 곳은 없었고, 매번 마트나 편의점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제조 일자를 확인하여 구매를 하기에도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었다. 안정적 공급에서 탈락이었다. 그래서 밤에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를 대비해 집에 디카페인 몇 개 정도만 구비해 두고 있다.
그 다음은 드립 커피였다. 마침 종이 필터로 내린 커피가 건강에 좋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라 커피는 종이 필터로 내려 먹어야지 하던 참이었다. (커피 오일에 함유된 카페스트롤(카페스톨)이 건강에 좋지 않아 종이로 여과시키면 된다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 가까이에도 직접 커피를 볶는 곳이 있고 인터넷으로도 언제든 취향 껏 원두를 살 수 있으니 원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한번 내리면 작은 양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진하게 내려져 가족이 나눠 마실 수 있을 정도의 양이 나왔다. 그러나 내린 후 몇 시간이 지나면 향이 변해 내릴 때의 맛을 즐기기는 어려웠다. 가족 중 덜 마시는 사람이 생기면 남아버리기도 해서 아까웠고, 매일 내려야 한다는 것도 약간은 부담이었다. 귀찮고 아까워서 탈락. 그래도 드립 커피를 내리는 순간이 나에게는 향기로운 명상 시간과도 같아, 조금은 쓴 커피가 땡기거나 왠지 우중충해 아침부터 재즈를 듣고 싶은 날에는 종종 드립을 해서 마시곤 한다.
다음은 빈브라더스의 콜드브루 시리즈였다. 갑자기 문자로 30% 세일을 한다고 와서 어떤 제품인지 살펴봤다. 550ml 통에 진한 콜드브루 원액이 담겨 오는데, 이 원액을 물이나 우유에 섞어 마시는 것이다. 원액은 냉장보관이었다. 주문을 해봤다. 편리한 건 둘째 치고 웬걸 너무 향기롭고 맛있었다. 콜드브루인데다 약배전의 원두콩이어서 향기가 정말 엄청 났다. 난 사실 원두에서 초콜릿, 견과류, 시트러스 향이 난다 하는 것들을 정말 믿지 않았다. 특히 오픈된 와인에서 나는 강한 초콜릿 향을 한번 맡아 본 이후에는 커피에게 사기당했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잘 내린다는 커피 집에 가서 마셔봐도 향도 잘 모르겠을 뿐더러 약간의 쓴맛, 신맛, 단맛 정도가 다를 뿐이었다. 커피 취향이란 그 미묘함 사이에서 결정되는 어려운 취향이구나- 확실히 나는 산미를 좋아하긴 한다 -라는 생각을 해왔었는데, 이 커피는 무슨 맛이라고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정말 과일티 맛이 나고 캬라멜 단 맛이 났다. 가족들도 신기해하고 맛있어했다. 한동안은 그렇게 즐거운 커피 라이프를 즐겼다. 그러나 품절되어 구입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몇 번 생기자 습관처럼 마셔야 하는 나로서는 다른 방법을 고민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콜드 브루를 내려 마시기로 했다. 콜드브루 방식은 원액을 추출해 냉장 보관을 하기 때문에 맛이 변하거나 남아서 버리게 되는 일도 없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마침 카카오 메이커스에 '마이더치 콜드브루 메이커'가 올라와 있어 주문을 해 2주 동안의 긴 시간을 기다려 받게 됐다. (그동안은 친구의 추천으로 매일 유업의 코스타리카를 마셨다. 쓴 맛이 덜한 건 좀 아쉬웠지만 편의점에서 파는 커피 특유의 이상한 향 같은 게 나지 않고 생각보다 깔끔하니 괜찮았다.) 1초에 한 두 방울 정도 씩 떨어지게 해두면, 한번 내릴 때 6시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유리병에 옮겨 담아 이틀 정도 냉장 숙성 시켜 마시면 더 향기롭다. 내려서 유리병에 담아두면 그렇게 뿌듯하고 든든할 수가 없다. 커피 향도 맛도 좋아서 그런지 가족들도 커피를 잘 마시게 되어 500ml 정도를 내리면 이틀이면 다 먹는다. 그래서 요즘은 두번 정도 내려 병을 가득 채워 둔다. 그러면 나흘 정도 마실 수 있다. (정확하게 컵 수로 나오면 좋겠으나 가족들이 얼마나 마시고 있는 지 잘 모르겠다. 대략 하루 4-5컵 정도 생각하면 될까?)
이렇게 콜드브루를 내려 마신 지 한달이 좀 넘었다. 이 방법은 향과 맛이 좋을 뿐더러 공급에 문제가 있을 것 같지도, 힘들 것 같지도 않다. 향과 맛이 조금 단조로워질 때 쯤 다른 원두 콩을 시도해 본다든지, 빈브라더스의 콜드브루 전략처럼 약배전의 콩만 써본다든지 하는 즐거운 실험거리들도 많이 남아있다. 6개월의 긴 커피 여정을 끝내고 직접 내리는 콜드브루에 정착해, 위로와 응원의 커피를 매일 아침 마주하니 드디어 나의 재택 근무가 완벽해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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