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뜨기전에자자

[의학의법칙들] 사전 지식, 예외, 편향으로 확률 게임하는 법 본문

삶/책 리뷰

[의학의법칙들] 사전 지식, 예외, 편향으로 확률 게임하는 법

조앙'ㅁ' 2020. 3. 23. 09:00

책 제목: 의학의 법칙들 The Laws of Medicine
저자: 싯다르타 무케르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현대 의학은 1930년대 이후에 발전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 외과적으로 충수절제술이나 괴저가 생긴 팔다리의 절단술 등 괄목할만한 업적을 내놓고 있었지만 거의 모든 내과적 치료는 3P, 즉 위약(회춘제, 원기회복제), 완화요법(모르핀, 알코올, 아편, 습포제, 향유), 파이프 뚫기(설사약, 완하제, 구토제, 관장) 중 하나였다. 병에 걸리면 회춘제나 원기회복제라 불리는 위약을 주며 나을 거라고 말을 해주거나, 정말 아픈 고통의 경우에는 진통제를 놔주거나, 변비같이 뭔가 막히면 파이프 뚫기를 행해버리는 매우 원시적인 수준의 치료법만이 행해졌던 것이다. 내과의 발전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일어났다고 말할 만한 시기는 20세기 초이다. 당시에는 의학의 가장 긍정적인 발전 중 하나라고 부를 수 있을, '치료적 허무주의'가 의학계를 지배했다. 새로운 세대의 의사들은 19세기의 치료법이 거의 쓸모가 없다는 점을(솔직히 말해 해롭다는 점) 인정하고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존스홉킨스의 윌리엄 오슬러 같은 선각자들은 향후 세대가 진정한 치료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질병을 정의하고, 관찰하고, 분류하고, 명명하는데 집중했다. 오슬러는 질병이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자연사'를 관찰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환자들을 내과 병동에 입원시켜 관찰했다. "무엇보다, 해를 입히지 말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구절이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로 바뀌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는 심오한 정화효과가 있었다. 1930년대에 이르러, 의사들은 다양한 질병의 경과를 관찰하고, 질병 발생과 진행에 대한 모델을 만들면서 전혀 새로운 의학의 기초가 다져지기 시작했다. 
 이 오래지 않은 학문인 의학을 공부하던 저자는, 의학이 완벽하기보다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함을 알게되고, '의학은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갖게된다.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관한 글이다. 과학에는 몇가지 법칙이 있고 '의학의 법칙'이라 말하려면 오직 의학에만 적용되는 의학의 보편적 원리들을 진실에 관한 한마디의 언명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의학이라는 학문을 거대한 보편성으로 부호화하거나 환언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언뜻 보기에 도저히 방향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이 전문적인 세계를 젊은 의사들이 스스로 헤쳐나가려고 할 때 방향을 일러주는 몇가지 규칙을 상상하며 시작했고, 그 결과 의학의 기본적인 원리에 대해 매우 진지한 몇 가지 생각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다음은 그 3가지 생각에 대한 소개이다.
### 제 1법칙
강력한 직관은 근거가 미약한 검사보다 훨씬 힘이 세다. 강력한 직관이라는 것은 사전 지식을 기반으로 한 확률 게임을 말한다.
저자는 의사가 가져야할 덕목으로 '사전 지식'을 꼽는다. 현대의 의학 검사는 위양성 혹은 위음성 등으로 결과가 잘못 나올 확률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전 지식을 통해서 증거를 수집하여 필요한 검사들을 진행하고 궁극적으로는 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전 세대의 의사들은 아주 뛰어났지만 최신 의학 기술에서는 종종 무시되는 일"이라며 사전 지식을 기반으로 확률 모델을 적용하고 있는 에피소드 두가지를 소개한다. 수 개월 내에 갑자기 살이 빠지고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는 환자가 찾아온다. 암이라고 추측하고 여러 검사를 시행하지만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그 환자가 마약을 할 것이라 추측되는 사람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HIV일 것이라 추측하게된다. 처음부터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하면 되는 것 아니냐 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비용문제도 존재할 뿐더러 HIV검사를 포함한 많은 검사들은 위양성, 위음성 등의 경우가 존재하고 이런 확률을 갖고 진단을 내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검사란 그전에 가늠해 본 확률이라는 맥락에서만 합리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라고 말한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이 어떤 검사를 시행한다면 위양성률 혹은 위음성률 때문에 진단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종양학의 대가가 폐암 환자를 진찰하는 모습을 지켜본 일화이다. 그 의사는 심장과 폐를 청진하고, 피부에 발진이 없나 살펴보가 환자에게 일어나 걸어보라고 한 후 희한한 질문을 던졌다. 불쑥 틀린 날짜를 댔고,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외출한게 언제인지, 혹시 글씨체가 변하지는 않았는지, 발끝이 드러나는 신발을 신을때는 양말을 덧신는지 등을 물어봤다. 이 질문들은 환자의 우울증, 불안, 불면증, 성기능이상, 신경병증 그 밖에 병 자체와 치료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다양한 합병증을 체크한 것이었다. 언뜻 의아해 보이는 질문들은 알고 보면 똑같은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바늘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것들이었다. 그는 질문을 통해 가장 예리한 의사들만 할 수 있는 일, 즉 증거의 중요성을 가늠하고 추론하여 이 환자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를 정확하게 하는 과정을 수행했던 것이다.
이런 추론과정이 특정 검사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 금융, 도박, 점성술 등 예측에 근거한 분야라면 어디서든 이런 과정이 수행된다. 핵심원리는 사전지식을 기본으로 한 확률게임이다.
### 제 2법칙
현대 의학은 기본적인 원칙들이 완전히 재구성되는 중이다. 우리의 질병 모델은 대부분 어중간한 혼합 모델이다. 과거와 현재의 지식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이러한 혼합 모델은 질병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키지만 사실 우리의 이해는 불완전하다. 우리는 '정상'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규칙들을 만들어냈지만 아직도 생리학과 병리학을 깊고 일관성 있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외가 중요하다.
임상 실험을 하다보면 모든 것이 100%의 확률로 나오는 경우는 없다. 이전에는 예외들이 나오면 쉽게 무시되었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이런 예외 케이스들을 유전자와 접목해 연구하는 등 심도 깊게 조사하여 의학의 지평을 넓히기도 한다. 1934년 출간된 [과학적 발견의 논리]에서 철학자 칼 포퍼는 과학적 시스템과 비과학적 시스템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한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과학적 시스템의 기본적인 특징은 명제를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명제를 반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모든 이론은 태생적으로 거짓임이 입증될 가능성이 있다. 이론이든 명제든 예측이나 관찰에 의해 거짓임이 입증될 여지를 내포하고 있어야만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반증 가능성'을 제공하지 못하는 이론은 과학적이라고 할 수 없다.
'정상적인 것들'은 규칙을 가르쳐 준다. 하지만 법칙을 가르쳐주는 것은 '예외들'이다.
### 제 3법칙
의학적으로 완벽한 모든 실험에는 완벽한 인간적 편향이 끼어든다. 더 넒은 범주로, 모든 과학은 인간적 편향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정교한 기계를 훈련시켜 데이터를 수집하고 저장하고 처리하도록 한다고 해도, 그 데이터를 관찰하고 해석하고 어디에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의학은 두가지 이유로 이런 편향에 특히 취약하다. 첫번째는 희망이다. 우리는 약이 듣기를 바란다. 희망은 의학의 가장 큰 아름다움이자 가장 부드러운 중심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로 근치적 유방절제술을 소개한다. 두번째는 환자의 능동적 실험 참여이다. 환자가 임상시험에 등록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환자의 정신적 색체가 변하며, 이는 다시 임상시험에 영향을 미친다. 또, 실험이 완벽하게 수행되더라도 모든 경우에 적용 가능한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새로운 의학기술이 개발되면 오히려 편향이 증폭되기도한다.
  저자는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임상의들은 편향을 피하는 육감 같은 것을 지닌 듯하다.” 고 말한다. 잡다하게 흩어져 있는 사전 지식을 언제 환자들에게 적용해야 할지, 보다 중요하게는 언제 적용해서는 안 되는지 거의 본능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데이터와 시험과 무작위배정 연구의 중요성을 이해하지만 이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 사려 깊다. 의사들이 정말로 사냥해야할 것은 바로 편향이라고 강조한다.
사전 지식, 예외, 편향. 의학의 법칙. 세가지가 모두 인간 지식의 한계나 제한과 관련있다는 사실은 교훈적이다. 의학 기술은 정교해졌지만 의학이 떠맡은 책임 또한 엄청나게 크고 복잡해졌기 때문에 불확실성은 아직도 의학의 영역에 풍토병처럼 남아있다.
 저자는 의학의 법칙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어떤 것의 상황을 파악하고 진단하고, 예측을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하는 곳에는 대부분 적응 가능할 것 같다. 결국 우리가 우주/몸 등 어떤 계의 복잡성을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하는 지 알려준다는 점에서 최근에 읽은 책들과 이어진다. 네이트 실버의 '신호와 소음'이 그랬고,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가 그랬다. 그들은 우리들이 세상을 조금 더 확률에 기반하여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끊임 없이 역설하고 있다. 우연히 이런 책들만 접하게 되는 건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전 지식과 경험적 확률을 적용해서 사후 확률을 계산하는 법에 대해 알고 싶다면 '신호와 소음'을, 편향을 제거하는 데 기준이 되는 것들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팩트풀니스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