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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제주 60k 완주 - 대회 전날

조앙'ㅁ' 2026. 10. 19. 09:00

D-1
대회 전날. 제주도에 도착했다.
제주도에 도착하면 우진 해장국을 먹곤 한다. 카카오 다닐 때 같이 출장 간 아저씨들에게서 배운 팁이다. 조금은 긴 교통편 끝에 불편한 속을 뜨끈한 고사리 해장국으로 달래고 일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밥을 다 먹고 카페에 들러 바다를 보고 잠시 즐겼다.
(소통 오류로 제주시에 숙소를 잡은 동호회 횐님과..)

못생겨도 맛은 좋아
아줌마같이 찍는다고 한소리 듣고 심기일전하여 다시 찍었다ㅠㅜ




다음으론 제주 월드컵경기장으로 선수 등록을 하러 갔다.
아침에 선수등록을 하려면 분주하고 바쁘기 때문에 부스도, 선수등록도 미리 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듯 하다.

선수 등록을 마치곤 같은 대회에 참가하는 회사 동호회분들을 만나 함께 저녁을 먹으러 근처 식당에 갔다.

식당엔 벌써 대회 참가자로 보이는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갈색으로 그을린 살갗의, 훈련으로 피부가 얇아진, 어쩌면 가장 야생의 얼굴을 하고 있다. 딱봐도 100 마일(160km 트레일러닝) 대회 선수시구나, 싶은 분들이 보인다.

이렇게 지방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그 전날 식사하는 공간, 그곳의 공기에 흐르는 엄숙함과 비장함이 있다. 더운 여름, 최선을 다해 훈련했을지라도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대회 전에 흐르는 이 비장함과 긴장감을 좋아한다.
문득 3년 전, 동호회에서 달리기 코칭 받던 날이 떠오른다. 그 주 주말에 마라톤을 나간다는 사람들이 풍기던 비장함이 있었다. 비장했던 그날의 공기가 나를 마라톤의 세계로 이끌었던 것 같다. 그 날 처음으로 마라톤에 나가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나도 그들과 함께 긴장감 속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어쩌면 대회에 참가해서 결과를 내는 것 보다 이 순간을 가장 즐기는 것 같다.
대회를 더이상 나가게 되지 않는다면 가장 그리워할 것이 이 순간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또,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여행하는 삶이 참 좋다는 생각도 든다. 여행하는 이유를 종종 찾는 나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나의 배번은 오삼오삼. 오삼불고기였다. 호카에서 마그넷을 만들어줘서 왠지 기분이 좋았다.
보말 칼국수. 미역도 들고 해서 약간 쌀쌀한 날씨에 뜨끈하니 좋았다.



저녁 메뉴는 보말 칼국수다. 평소같으면 다 먹지 않았을테지만 야무지게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밥도 한숟갈 말아먹었다.
평소엔 달리기를 쉰다거나 탄수화물이 가득한 식사를 할 때 죄책감이 자주 들곤 하는데, 이 시기만큼은 그런 감정에서 해방된 채로 지내니 천국이 따로 없다.
대회가 가까워져오면 휴식과 식사마저 훈련이 되는 것이 참 마음에 든다.
장거리 대회에 참가하기 최소 2-3 주 전 부터는 미세 근육들을 모두 회복시키기 위해 부하를 주던 모든 훈련은 그만두거나 줄이고 가벼운 조깅 위주로 전환한다. 이 때가 되면 갑자기 자유시간이 늘어나고 휴식을 취하고 있어도 죄책감이 들기보다는, ’휴식도 훈련이야‘ 라든지, ’나는 회복을 하는거야‘ 하며 만연한 미소를 짓고있게
된다.
대회 3일 전 정도 부터는 카보로딩(탄수화물 채우기)이라는 것을 하는데, 기술적으로 제대로 하려면야 힘들겠지만 아무튼 그동안 못먹었던 맛있는 것들을 꽤나 맘껏 먹어도 되는 시기가 된다. 며칠쯤은 아무거나 먹어도 살이 그렇게 찌지는 않고, 이 때 잘 먹어야 몸에 글리코겐 축적을 잘 할 수 있다. 대회에서 가장 중요한건 그날 섭취하는 에너지보다는 몸에 있는 에너지가 더 중요하다보니, 열심히 먹어여하는 시기가 되겠다.
잘 먹는 것도 훈련이라니 꼭꼭 씹어 맛있게 먹는다.


숙소에 돌아가 장비를 모두 펼쳐 체크를 했다.
이번 대회의 특별한 점은 헤드랜턴이다.
헤드랜턴은 정말로 사고 싶지 않았다.
밤에 안보여서 위험한데 왜 산을 뛰어야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대회를 해보니까 오후 5-6 시 경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부터 산은 아주 어두워져서, 헤드랜턴이 없으면 대회를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다.
나는 이 대회 이상으로 긴 대회는 관심 없기 때문에 적당한 가격의 나이트코어 25 를 샀는데, 지금은 그냥 좋은 거 살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든다.
밝을 수록 좋긴하더라구...

대회 개회식은 전날 19:30 에 한다. 하지만 그 시점엔 다들 숙소에 가서 잘 준비를 한다. 긴 레이스가 될테니까!
필수장비 빠뜨린건 없는지 두번 세번 체크한다. 없으면 실격 처리다. 붕대는 챙길 때 마다 이거 쓸 날이 오면 정말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 잘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생각해보니 지방 대회에 혼자 가서 잔 건 처음이네 싶었다😂
같이 대회 참가하던 여성 횐님들은 어디에...ㅠㅜ
나도 어차피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당분간은 은퇴니깐 그러려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