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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샵 - 흑백요리사

조앙'ㅁ' 2026. 5. 25. 18:44

 

플레이샵을 기획할 때 가장 어려운 건 애매한 제약 안에서 모두가 만족할 경험을 만드는 일이다. 다 같이 즐길 수 있어야 하고, 어색하지 않아야 하고, 끝나고 나서 "시간 잘 썼다"는 느낌이 남아야 한다. 그런데 예산이 넉넉하지 않으면 선택지는 빠르게 줄어든다. 공연, 체험, 혹은 원데이 클래스를 하고 식사까지 챙기기에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너무 평범한 식사 모임으로 끝내기에는 아쉽다.

 

예전에 동료 둘과 함께 팀 플레이샵을 준비하면서 딱 그 문제를 만났다. 몇 가지 아이디어를 두고 고민하다가, 차라리 이 애매한 제약을 재미있는 규칙으로 바꿔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때 나온 주제가 흑백요리사였다. 재미도, 예산도 모두 잡을 수 있는 기획으로 보였다.

 

이 컨셉이 좋았던 이유는 단순히 요리가 재밌어서가 아니었다. 요리는 참여자가 구경꾼이 되기 어렵다. 누군가는 직접 만들고, 누군가는 판단하고, 누군가는 돕고, 누군가는 분위기를 띄운다. 게다가 사람마다 요리 실력 차이가 꽤 큰데, 그 차이마저 어색함이 아니라 전략이 된다. 잘하는 사람은 어디에 배치할지, 초보자는 어떤 역할을 맡을지, 제한된 시간 안에 어떤 메뉴를 완성할지 자연스럽게 팀 단위의 의사결정이 생긴다.

 

문제는 현실이었다. 동시에 열 명이 다 같이 요리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가 한 번에 요리하는 방식 대신 팀전으로 규칙을 바꿨다. 다섯 명씩 두 팀으로 나누고, 각 팀은 다시 두세 명씩 나뉘어 한 시간씩 번갈아 요리해 최종 결과물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현장에서 직접 요리하지 않는 사람은 말로 지시할 수 있게 했다.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참여감이 꽤 높아졌다. 손을 쓰는 사람만 플레이어가 아니라, 옆에서 전략을 짜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게임에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준비 과정에도 소소한 장치를 넣었다. 미리 설문을 받아 요리를 좋아하는지, 어느 정도 해봤는지, 어떤 닉네임을 쓰고 싶은지 물었다. 익명 톡방을 만들어 각 팀이 어떤 메뉴를 할지 정하고, 필요한 재료를 정리해 전달하게 했다. 서로 너무 익숙한 사이일수록 이런 작은 장치가 분위기를 바꾼다. 평소의 역할이나 직급보다 "오늘은 어떤 닉네임의 어떤 요리사인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이 생긴다.

토치까지 있었떤 쿠킹 스튜디오!! 오버진 스튜디오 최고! 왼쪽은 쭈삼불고기, 오른쪽은 스테이크 리조또다. 츄릅

 

재료는 새벽배송으로 준비했고, 당시 마침 할인 시즌이던 투쁠 안심은 넉넉하게 공통 재료로 깔아두었다. 나머지는 팀이 자율적으로 채우게 했다. 심사 방식도 고민이 있었지만, 결국 별도 심사위원을 두지 않고 모두가 투표하는 쪽을 택했다. 완벽한 공정성보다 중요한 건 모두가 끝까지 참여하는 감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요리가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데, 몇 명만 심사하고 나머지가 기다리는 구조는 누구에게도 좋은 경험이 아닐 것 같았다.

 

실행하고 나니, 기획 단계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이 이 워크샵을 훨씬 더 좋게 만들었다. 한 분은 닉네임을 벤쿠버 맛피아로 정했는데, 실제로 워킹홀리데이 시절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실력이 압도적이었다. 또 어떤 분은 자취를 오래 했지만 집에서 요리를 거의 해본 적이 없어서 파스타 삶는 법도 낯설어했는데, 워크샵 이후 집에서 몇 번 연습한 뒤 가족에게 직접 요리를 해드렸다는 후기를 전해 감동이 있었다.

 

돌발상황도 있었다. 배송 오기로 한 식재료 일부가 도착하지 않았다. 특히 '밤티라미수'에 들어갈 생크림이 비어버린 건 꽤 난감했다. 그런데 그 순간 몇 명이 급히 밖으로 나가 재료를 구해오는 작은 서브 미션이 생겼고, 시작 전에 들렀던 베이커리 카페에서 사정을 설명해 생크림을 구해온 능력자도 있었다. 계획표만 보면 사고였지만, 현장에서는 오히려 모두가 더 몰입하게 되는 장면이 되었다.

 

대단히 맛있었던 우리팀의 요리 솜씨. 와인과 함께 곁들여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른쪽은 완성되지 못할 뻔 했던 밤티라미수!!

 

 

요리가 완성되고 나니 테이블이 생각보다 훨씬 근사했다. 그냥 먹기 아쉬워 근처 와인숍에서 와인까지 사 와 곁들였고, 그 뒤에는 남산으로 이동해 가을 날씨를 즐기며 산책한 다음, '백요리사'의 미슐랭 빕구르망에 빛나는 저녁 코스 식사를 했다. 그런데 막상 회고를 해보니 많은 사람이 "저녁보다 우리가 직접 만든 점심이 더 맛있었다"고 말했다. 준비된 좋은 식사를 소비하는 것보다, 같이 만든 결과물을 나누는 경험이 더 강하게 남았던 셈이다.

 

 

요리는 사실 노동인데, 즐거운 마음으로 재밌게 참여해준 팀원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이 워크샵이 좋았던 이유는 예산 부족이라는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좋은 기획이란 제약 안에서, 참여자들이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하는 방식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예산이 넉넉해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즐기기만 해도 되었던 워크샵보다 더 강렬했던, 재밌는 추억이 되었다. 

1등 팀에게 부상으로는 나무주걱이 주어졌다!